무덤에서 고급 주택단지로 변한 이곳[땅의 이름은]
[이데일리 전재욱 기자] 조선 시대 도성에서 사람이 죽으면 시신을 성밖에 묻었다. 대부분 서쪽으로 난 서소문과 동쪽으로 트인 광희문으로 운구해 주변에서 장례를 치렀다. 서소문과 가까운 애오개 지명 유래 가운데 하나가 ‘어린아이 무덤’이 형성된 지역이라는 것이다. 조선 시대 천주교 순례터(참형장)가 서소문 가까이 있던 이유를 여기서 찾는 분석도 있다.
신당리 묘지. 묘지 넘어로 보이는 광희문과 그 뒤로 보이는 남산.(사진=서울역사박물관)
광희문이 ‘시신이 나가는 문’이라는 의미의 시구문(屍口門) 달리 불린 것도 마찬가지다. 음산한 기운 탓에 일반인은 평소 이 문을 드나드는 걸 꺼렸다고 한다. 그럼에도 조선의 왕 인조는 왕의 신분으로 이 문을 지난 적이 있다. 병자호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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